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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일년째 백수 - 그랬다고 말하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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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는 좀 정리 하고, 다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쏟아내기를 하고자 한다.


지난 해 3월에 일을 그만 두었다. 

한국에 돌아오기 전에 다른 일을 구해 보기도 했지만 향수병을 앓고 있는 와중이라 제대로 안 되었다고 핑계를 댔지만,

솔직히 난 그냥 평일 대낮에 돌아다니는 기쁨을 에딘버러에서 만끽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6월에 한국에 돌아와서는, 도무지 회복 될 것 같지 않은 피로감이었지만

3개월만 지친몸을 쉬고 다시 일해야할텐데.... 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모아뒀던 돈을 야금야금 쓰고 있는 백수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애써 무시하고 있던, 막연했지만 저 밑바닥부터 확신처럼 자리잡고 있던 그 느낌,

'마냥 쉬고 싶다.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 이러다 다시 일을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그대로 흘러갔다.


귀국 후 두 달간, 신청해 두었던 edX강의를 억지로, 간신히 마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 인생에 처음일어났던 일은 돈을 내고 등록한 수영장에 단 하루도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등록할 때까지가 문제지 보통 일단 등록하면 되든 안 되든 가고 보는 게 나였다.

걸어서 한 시간, 버스타면 금방 갈 수 있는 옆동네 수영장을 가는 일이 그렇게 꿈만 같이 느껴질 수가 없었다.

내가 나이먹고 나태해졌나?하고 생각했다.

그런 죄책감이 싫어서 그냥 포기해 버렸다.

시간을 좀 갖고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사실, 안 그럴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정말 힘들었다. 

매일 아침 온 몸이 지구 중심으로 푹 꺼져 버려서 절대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시차 적응이라고 생각해서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수린이 언니가 전화 해서 언니의 경험으로 영국에서 돌아와서 두 세달은 뒤도에 따른 기압차로 관절이 아파 힘들었다고 말해줘서 

다행이지 나는 또 한껏 내 몸이 이상하다고, 정말 짜증난다고 우울해 하기만 할 뻔했다.

그렇지만, 그런 관절 통증이나 수면시간 조절 이상으로 뭔가, 내 몸이 잘 못 됐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가서 피 검사도 하고, 내시경도 하고, 치과도 가고, 산부인과 검진도 받았다.

몸은 안 좋은 데 내 갑상선 수치가 왜 정상 범위에 없는지, 왜 생리통은 그렇게 심한지 원인에 대해서 제대로 말해 주는 의사는 없었다.

다른 때와 달리 이번에는 검진비용 아깝지(?) 않게 내 오른 쪽 난소에는 혹이 있었고 자궁 내막증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3개월 후 추이를 보고 수술을 하기로 했다.

그 사이 두달 간 다른 병원들을 오가며 중복 확인 결과 수술은 해야 하는 것이었다.

수술이 필요하면 수술은 하고 회복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 의지나 생각과 달리, 문제가 된 것이 자궁이었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심리적 동요는 엄청났다.

'애를 낳을 수 있나?그런데 내가 엄마가 되고는 싶었나? 결혼은 하고 싶었나? 결혼을 하긴 하려나?

지금은 아닌데 나중에 하고 싶으면 어떻게 하지? 이상태면 소개팅도 할 자신 없어지는데...'

다 기억나지 않지만, 수많은 막연한 생각들로 압도 되었다.

알 수 없는, 그리고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힘들어 하지 말고,

내 앞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대처 하며 나대로 살면 된다는 결론에 이르러 지금은 마음이 정리가 되었지만.


그 와중에 엄마는 피부지적에 매일밤 삼십분씩 불만을 쏟아내고...

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지, 어떻게 해야 그 마음이 풀리는 건지, 

내가 그 잔소리들을 걱정으로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도 아니고, 정말 사라지고 싶었다.

걱정을 해 주는 것도 전혀 감사하지 않았다.

혼자 있고 싶었는데 그럴 능력도 없고.

처음으로 그렇게 강렬하게 많이 못 벌고 못 모은, 돈 없는 염수정이 "짜증"났다.


내가 정말로 슬펐던 이유는, 내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사실 뿐이 아니었다.

아픈 건 병원 다니고 약먹고 시간 가면 낫겠지 했다.

그 와중에도 빨리 나아야 하는데, 이렇게 그냥 집에서만 있으면 안 되는데, 내가 꾀병 부리고 있나? 하는 압박감.

친구들 만나서 상태에 대해서 대강 말할 수는 있지만 내가 지금 이렇고 저렇고 징징댈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러고 싶지 않았다.

친구 뿐 아니라 가족 누구를 붙잡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아니었다.

시간을 좀 가지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같이 있어 주기만 바랐던 엄마, 아빠는 나이만 먹고 집에 처박혀 있는 내가 이렇게 자리잡고 들어 앉을까봐 전전긍긍하고,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거냐고 물었다.

가끔 엄마아빠와 대화하면 내 싸가지 없는 말투 때문에 부모 마음 1도 모르는 딸로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내가 자식으로서 갖는 죄책감과 죄송함 또한 나를 압도 한다.

내가 이걸 극복하면 누구하고도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가 생각하지만, 그때는 나는 뭘 하고 싶지가 않았다.

정말 그냥 가만히 숨만 쉬고 싶었다.


부모에게 조차 존재만으로, 함께 하는 시간만으로 즐거움일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힘들었다.

평생 그러고 있을 것도 아닌데 있는동안 같이 있는 시간 즐겁게 생각하면 안되는 건가?

(부모랑도 이런데, 결혼한다고 해서 그 사람은 어떤 의지가 되는 걸까? 왜 자꾸 나보고 결혼을 하라고 하는 건가?)

내가 열심히 회복하고 힘을 얻을테니 별일 아니라는 듯 있어 주기만 했으면 좋겠는데, 부모로서 어떻게 그럴 수 있겠냐며...

그 때 나는 그 사랑과 걱정이 폭력으로 느껴졌다.

(엄마 아빠가 잘 못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 당시 내 마음이 그랬다고 말하고 있는 거다.)


우주에서 나 혼자였다.


만화책 DVD에서 땀이가 흘린 눈물이 방을 가득 채워서 거기에 빠지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슬픔에 그렇게 빠져버려서 숨을 쉴 수 없는 것 처럼 느껴졌다.

슬픔에 빠진다는 게, 온몸이 무겁게 적셔지는 게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고 느껴졌다.

슬픔이라는 건 이런 거구나. 깊은 슬픔이라는 감정을 처음 배운 것 같기도 하다.

(나 지금 카펜데... 왜 눈물 남? 나 정말 어디 물어보고, 말할 데도 없이 앓았던 듯.)


그 때 내가 또 힘들었던 건, 과거에 대한 후회이지 않았나 싶다.

시간낭비 하지 않기 위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방법이 잠을 줄였던 거고(역효과로 주말은 잠에 바쳤지만) 

피곤해도 운동을 했던 거였는데,

지난 일년간 그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었는지 깨닫게 된 것이었다.

나는 노력도 멍청한 애였다. 

방향도 중요하다는 것을 참, 너무 몰랐다.


그리고 지금은 정말 바보가 된 것 같다.

회사에 가서 업무를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냥 상식선에서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아봐야 할까?

씸이 대전에 내려오기로 했던 때, 토요일에 오기로 했으면 금요일에 시간과 장소에 대해서 얘기해 봐야하는 데 

그런 사소하고 당연하게 느껴지는 일의 순서 조차 생각하기 힘들었던 경험,

서울에서 외출하고 너무 피곤해서 씸을 앞에 두고 하품을 계속 해서 씸이 짜증나게 했을 때 뭔가 잘 못 됐다고 느꼈지만 

그게 뭔지 바로 생각해 내기 힘들었던 경험... 상황파악 안 되는 내가 두려웠다.

한의원에서는 순환이 잘 안 되어서 뇌에 산소 공급이 잘 안 되어서 그렇게 느끼는 거라고 말해줘서 건강해 지면 되겠구나 했지만,

여전히 겁이난다.


몇달 간의 기분은 추락하는 동안 밧줄를 잡고 있었는데, 힘이 빠져서 줄을 놓쳐버려 내 등은 바닥에 닿아버렸고,

나는 손을 뻗어도 다시는 그 밧줄를 잡고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은 거였다.


지난 일년간, 누군가는 평생 느낄일도 없고, 느끼지 않아도 되는 여러 감정들을 지나왔다.

그게 정말 싫었다. 

누군가는 굳이 느낄 일도 없고 느끼지 않아도 되는 감정들을 혼자 지나고 있다는 것.

그냥 뭔가 내가 바보같아서, 잘못 된 길을 가고 있는 것 같고 혼자서 헤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코펜하겐에서 자전거 모험 한답시고 아무데나 내렸던 역이 공항 근처라서 볼 것 없고, 사람들도 없고, 건물들도 없는 

무서운 수풀 속을 허벅지 터지도록 달렸던 기분이었다. 

공항 근처면 아무것도 없는 상식만 알았어도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모든 여정을 망쳤던 것은 아니고, 출발점을 잘 못 찾은 게 여전히 아쉬워서...)

나는 정말 뭘 모르고 있는 걸까하는 어깨쳐짐...


그런 와중에도 한 가지 다행인 건, 나는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분별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고, 내가 미래를 그리고, 바라보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괜찮아 질 것이라고.

좌절은 돌파구의 뒷면이니까.

허무해서 살 이유가 없다면, 더 자유롭게 뭔가 해 보면 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 첫번째 주절 거림이 시작이다.

다 쏟아내고, 조금씩 조금씩 돌아오고 있는 건강처럼, 뭔가 할 수 있겠지.... 


누군가는 왜 이런 걸 비공개 일기로 쓰지 않고 공개로 쓸까하고 생각하지 않을까?

실은, 나에게 물은 질문이다.

첫번째, 내 블로그에 이런 거 읽으러 오는 사람 없을 걸.

두번째, 공개로 하면 내가 좀 더 생각을 정리해서 쓰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세번째, 정말 우연히 누군가 나랑 비슷한 걸 느낀 사람이 이걸 읽게 되면 공감의 힘 1은 더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희망.


그 동안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을 지나 왔는데,

의욕 -10000이었던 나는 기록을 하지 않아서 놓친 게 많다.

이 기록은 그냥 현재 내 머릿속의 스냅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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