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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듣고 쓰고

책, 노동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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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비밀독서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채널바꿈을 멈추었다.

추천 도서 중에 노동의 배신이라는 책이 있었다.

제목이 내 눈길을 끌었고, 패널의 추천 이유도 내 관심을 끌었다.

패널의 추천 이유 언급 중에 이 책의 첫장 제목 "가난하기에 돈이 더 든다"라는 문장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왜 그 제목이 내 눈길을 끌었고, 그 문장이 기억에 남아 이 책이 읽고 싶어졌을까?

책을 보고 난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공감받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느꼈던 것들을 누군가가 공감하고 지적하는 것들을 보고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고 싶었던 것 아닐까한다.


그리고 이 책은 나에게 기회였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노동에 대해 어떤 생각에 갖혀 있었는지에 대해서 발견할 수 있는 기회말이다.


책을 읽은 계기로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막상 글로 쓰려니 내 생각이 엄청 뒤죽박죽이었다는 걸 본다.

그냥 그런 생각들을 두서없이 나열해 보는 것으로 한다.

그런 생각들을 시간이 흐른뒤에 꺼내보고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 바라보는 것도 나에겐 의미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내 짧은 생각에 부끄러워 질지도 모르는 일이고.


노동의 배신은 바버라 에런라이크 작가가 최저임금으로 월세를 내면서 적자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한지 실험하기 위해 

식당종업원, 청소부, 대형마트 점원으로 위장취업해서 겪은 이야기와 그 노동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 경험을 통해서 미국 사회가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얼마나 부조리 한 지를 지적하고 변화를 촉구한다.

그리고 책이 출판된 뒤, 10년 후 변화되지 않고 더 나빠진 상황에 대한 언급으로 마무리한다.

이 책이 출판 됐을 당시 미국의 최저 임금이 상승되는 결과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고등학교2학년인지 3학년 때 쯤, 

어버이날에 엄마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들이고 엄마를 끌어 안으면서 펑펑울었던 것이 기억났다.

지금도 철이 없고 생각이 부족함을 많이 느끼는 내가 고등학교 때 무슨 거창한 생각을 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엄마의 삶이 가슴아팠고 짐이 되는 것 같아 미안했다는 것은 생각이 난다.

나는 가난한 노동자의 딸이다.

우리 엄마와 아빠는 몸 쓰는 일을 해서 먹고 사셨고, 동생과 나를 키우셨다.

엄마가 일하는 강도로 보아 더 큰 돈을 받아야 하는 것 같은데 왜 항상 우리는 돈이 없을까?

정말 필요한 것만 사고, 외식도 안 하고, 여행도 안 가고  절약하며 사셨다. 

그렇게 쪼개쓰고 쪼개써도 왜 돈이 불어날 수 없는 걸까?

한 가정의 재산은 각 개인이 돈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커다란 영향을 받는 다는 게 사실이다.

지금 돌아보면 내 판단이지만 아빠는 젊었을 때 놓친 기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제1장에서 말한 가난하면 돈이 더 든다.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그리고 특히 요즘에는 모든 것을 개인의 노력으로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구조적으로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막노동, 청소부, 트럭기사, 마트 점원 등의 육체 노동 계층은 왜 사회적으로 존중 받지 못 하는 걸까? 

아니 왜 우리는 존중하지 않을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에서 일해야 돈 많이 벌어야 대우받고 산다"고 배워왔고, 들어왔고, 그런 줄 알았다.

회사를 다니고 자취를 하면서

끝없는 집안일에 미칠 것 같았을 때 가정 주부들이 이 사회에 제공하는 안정에 대해 깨달았고

맛없는 식당과 맛있는 식당을 번갈아가며 경험하면서 지불하는 돈에 대해 합당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사회 곳곳의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깨달았다.

노동자들이 하는 일들이 이 사회에 다 필요한 일들인데 어째서 서로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걸까 의문스러웠다.


노동환경을 보면 이 사회가 노동자를 얼마나 푸대접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몇 달전에 지하철 공사장에서 일정을 맞추느라 매일 늦은 시간까지 힘들게 일하고 주말에도 일하다가 사고가 나서 돌아가셨다는 

한 노동자에 대한 소식에 정말 슬펐다.

나와 같이 개발자로 일하다가 과도한 업무로 인해 폐를 절단해야 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 되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40-50대 남성들의 과로사도 그렇고, 이런 소식은 끊이지 않고 있지 않은가?


회사 다닐 때, 종일 일 하고 바쁘면 잠 안자고 일하고, 주말에 나가 일하고.

세번째 회사를 그만두기 일년 전 쯤에 야근 56시간 이상분에 대한 추가 수당를 줘야한다는 법에 의해 야근비가 생겼지만 

대부분의 내 직장생활중 야근비나 주말 수당은 받은 적이 없다.

회사들은 개인 생활을 침해하고 대가없는 노동을 당당하게 요구했다.


문제는 그런 것에 대해 커다랗게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 하고 있던 우리의 인식에도 있는 것 같다.

누군가 힘들다고 할 때, 엄살 피우지 말라고 내가 더 힘들다고 서로를 다그치는 사회 분위기 말이다.


그런데 그 문제인식을 하는 것 말이다.

이것도 시간적, 체력적, 정신적 여유, 여유라고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약간의 틈이 있어야 가능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것은 노동의 배신에 등장하는 저자의 동료들 인터뷰 내용과 지금 엄마와 아빠와 함께 살며 관찰한 그들의 생각에 기반한 것이다.

생계가 너무 고단하면, 생존의 경쟁으로 너무 바쁘면 그냥 삶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벅차다.


경조사비 챙기며 하시던 엄마 말씀이 떠오른다.

"돈 없으면 사람 구실도 못 해"

문화와 예는 생존이 해결된 뒤의 이야기다.


부결되기는 했지만, 스웨덴에서 최저임금을 제공하고 공공서비스 비용을 줄이는 정책을 실험하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기본 생활이 위협받지 않을 수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면, 사람들이 일을 할 때, 

불안을 기반한 삶이 해소되어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창조적인 생각과 논의가 활발해 질 수 있지 않을까, 발전된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보다는 게을러지고 일을 안 해서 정부에 의지만할거라고 불안해 하는 사람들의 말이 더 많았지만 말이다.

정말 기본 생존이 보장되면 사람은 창조적인 일에도 관심을 갖지 않고, 일을 하는 것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될까?

이건 교육의 방향을 바꿈으로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으로서 가치 있는 것을 창출해야 하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이유에 대한 교육.

인간성에 대한 새로운 고찰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또, 최근에 개인적인 인식에 변화가 하나 있었다.

노동과 돈,

어떤 노동에 대해 돌아오는 합당한 금액.

나는 노동의 강도와 시간과 그 대가는 비례 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에서 일을 시작하고 급여를 받았을 때 심적으로 알 수 없는 흔들림을 느꼈다.

내가 그들에게 제공하기를 바라는 서비스는 한국에서 했던 것보다 낮은 수준이었고, 일하는 시간도 훨씬 적은데 돈을 몇배로 받았다.

내가 생활한 나라가 영국이었고, 그 제도 아래에서는 4중 계약 구조로 불합리하게 일급이 줄어든 상태였지만

그것을 한국 기준으로 생각하면 급여의 차이는 컸다.

(내가 한국에서 작은 회사에서 연봉 상승폭이 작은 구조 안에서 일 했던 것도 사실이다.)

물가에 비해도 내가 쓰고, 여행도 하고, 충분히 저축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이었다.

나에게 가족 있었다면 충분한 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돈이라는 것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제공하는 노동의 강도 그리고 시간과 그에 상응하는 대가로 받는 돈의 금액은 별개일 수 있다.

그러니까 비례한 숫자로 매핑될 수 있는 절대값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맹점 하나 더.

나는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고, 더 힘들게 일하지 않기 때문에 돈을 벌 수 없다.

우리 엄마처럼 부지런히, 엄청나게 힘들게 일해도 평범하게 살기 힘들었는데 나 정도로 일 해서는 미래가 캄캄하고 뻔하다.

나는 엄마 아래였다.

이래서 일하기가 싫었나보다.

일하기 싫으니, 나는 무기력한 인간이고, 그 무엇을 할 용기도 사라졌나보다.

인간의 한계는 스스로 정한다는 어떤 영화의 대사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나는 인간이니까 계속 한계를 지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한계를 지을 때마다 한 단계 끌어 올리고 또 끌어올리고 해 보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건강을 핑계로 한량으로 보내는 이 시간 안에서 한 가지, 한 가지 나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완결해 보기로 한다.

책만 좀 읽어도, 괜찮을거야!

합리화로 마무리. 

호호호.


(감당하기 벅찬 생계를 나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엄마 덕분에 두서없는 생각을 이렇게 주절거릴 수 있는 기회를 누린다.

부모님은 성공했다. 

우리집이 넉넉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때로 부족했다는 것을 느끼지 않고 지나가게 해 주셨으니까 말이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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