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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명절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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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명절이 좋았다.

엄마와 작은 엄마 두 분이 너무 힘들 것 같이 보였지만, 맛있는 음식도 있고, 친척동생들도 오랜만에 만나고,

북적북적 즐거우니까 말이다.

영국에서 돌아온 뒤, 두 번째 명절이다.

선주언니가 결혼하고 난 뒤에 함께 보내는 두 번째 명절이기도 했다.

지난 추석을 쇨 때도 내세울 것 없는 자식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은 엄마를 보는게 심적으로 쉽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언니와 둘이 외출해서 술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없이 조카를 함께 보아야 했지만 

사랑스러운 아이와 노는 게 나쁘지 않았고,

오랜만에 보고 싶었던 친척들도 보고 나로서는 그다지 나쁠 것이 없었다.


이번에, 35년만에 처음으로 명절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명절이 돌아오기 한 달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차례상에 올라갈 것들을 메모하고 가격이 오르기 전, 

그리고 상차리는 날로부터 너무 오래 되기 적절한 날에 하나하나 장을 봐 나르기 시작했다.

내가 열심히 해야 잘 먹고 잘 사는 거지 없는 살림에 제삿상만 열심히 차려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제는 정말로 하기 싫다고 했지만 그녀는 하지 않을 것을 선택할 수 없다.

할머니가 계시는 동안에는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다.


명절 3일 동안, 우리엄마, 작은 엄마 두 분은 할머니댁에서 두 밤을 자면서 고모들까지 모두 만나보고 간다.

나는 이렇게 대 가족과 함께 북적대는 시간을 가져보는 경험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이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3일동안 3분의 엄마들은 끼니때마다 밥 차리고 치우고 밥차리고 치우고...

명절이 시작하기 전부터 준비해서 명절 내내 일을 하고 돌아가서는 또 자기 집안일을 한다.

이게 왜 가족을 위한 시간이지?

이게 왜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가족의 일원인 엄마, 작은 엄마와 작은 엄마는 그 시간을 얼마나 즐기고 계실까?


명절이 끝나고 돌아와서는 한동안 엄마의 마음속을 들어야 한다.

엄마가 하시는 이야기를 들어 드리기만 하면 되지만, 답없는 이야기, 

내가 어찌 해 드릴 수 없는 이야기를 쉼없이 듣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옆에 사람이 스트레스 받아 하니 나도 참 힘들다는 것을 새삼깨닫고 있다.


그런 스트레스를 겪고 있을 때 자꾸 나보고 가족을 가지라고 한다.

가정을 잘 꾸려나가는 게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하고 훌륭한 일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런 문화권 안에서는 그러고 싶지 않아진다.

그러면서 나는 엄마와 아빠와 라더와 같은 집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전혀 다른 세계에 있다는 경험한다.

가족이지만 우리는 함께이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다른 기대를 가지고 있다.

나는 분명 외로운 것 같다.

가족이 옆에 없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내 세계를 이해해 줄 사람이 없어 그런 거였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나는 이미 혼자 있는 걸 참 즐긴다.


이번에 처음으로, 가족이 생긴다면 조용히, 단둘이 생각을 나눌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절 스트레스로 너무 도피성 상상을 하는 것은 또 아닐까?

결혼 하지 않은 내가 하는 생각이나 말은 모두 뭘 모르는 소리로 치부되어 말도 자꾸 아끼게 된다.

쓰고나니 참 두서 없다.

나는 지금 매우 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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