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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위에 점하나/Scotland

1 May 2016 걷고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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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일요일마다 장이 선다는 스톡브리지 마켓에 가기로 했다.

그렇지만 정오까지 늦잠을 자서 내가 갈 때까지 할까 싶었다.

ㅇ ㅏ... 염수정 진짜.

어째든 챙겨입고 출발.


백수 된 이수 돈 아끼려고 필요할 때 아니면 버스를 타지 않고 있지만

혹시나 늦을 까봐 버스 타려고 챙겨온 동전을 꺼냈는데, 

웬걸...허허....£1짜리를 빠뜨리고 챙겼나보다. 아흑...

걷지 뭐, 한시간 정도면 도착 하겠지.

시장이 그때까지 하면 운이 좋은 거고 아니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ㅇ ㅏ...배고파.


계획은 시장에서 파는 길거리 음식 사먹고 카페에 가서 생각을 좀 정리하는 거였는데 

의도와 다르게 도보 여행이 되어 버렸다.

무거운 노트북은 고민하다 들어갔더니 어깨 단련만 시키고 돌아왔다.


Stock bridge market에서 Greek Souvlaki라는 케밥 같은 음식을 사먹었다.

고기가 덜 익어서, 맛있게 즐기지 못 했고 시장 끄트머리 점포에서 파는 커피를 샀는데 커피도 맛이 없었다.

그냥 와 보고 싶었으니까 경험이라 생각했다.

안타깝게 하루를 못가는 배터리는 반 밖에 못 채워와서 전화기도 이미 꺼졌다.


탐험 시작.

발길 닿는대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만난 멋진 Fettes college 건물, 

중심에 성을 비롯해서 에딘버러 시내 전체가 보이는 듯한 Inverleith park 에서의 에딘버러 전경,

또 쉬지 않고 걷다가 만난 에딘버러의 예쁜 건물들이 만든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

무심코 발견한 Water of Leith walkway, 내가 동화속에 들어왔나 싶었다.

와!! 뭐 이런 곳이 있나,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돌아보고 멈추어 서서 바라보고 그랬다.

의도하지 않았던 도보 여행이라 카메라도 챙겨 오지 않고 전화기도 꺼져서 눈에 담을 수 밖에...


그렇게 걷고, 걷고, 걷고, 걷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했다.

향수병으로 한국에 막 가고 싶다가도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살고 있었구나 싶은 감동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눈물이 나기도 했더랬다.


내가 왜 이러는 걸까?

이러면 안 되는데 왜 이렇게 심지 굳지 못하게 싱숭생숭할까?

봄 타나?

향수병은 핑계일까? 공부하기 싫어서? 너무 진부하잖아? 

잘 하고 싶으면서 공부는 왜 이렇게 하기 싫은가?

어쩌면 목표에 도달하지 못 할 것 같아서 지레 겁먹고 멈추고 싶은건가?

무기력이 또 찾아 왔다. 도대체 난 왜 항상 무기력 한거?

왜 난 사람이 의욕적이지 않고, 에너지 넘치지 않고, 재미없을까?


이러저러 많은 생각들.


문득, 나는 세상의 많은 말들을 사들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너무 외곬수적이야, 너는 눈치가 없어, 너는 세상 물정 모르고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 같아, 너는 너무 착해, 사람은 좀 약게 굴어야해! .....그럼 나는 나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를 생각했던 것 같다.

오늘 돌이켜 보니 내 기본 값은 순종이었던 것 같다. 

엄마 말씀 잘 듣고, 어른들 말씀 잘 듣고.

그런 와중에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다면 그걸 지킬 용기와 끈기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런 모든 세상의 말들을 사들여서 거기에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를 열심히 생각하고 그렇지 못 한 것 같으면 불안해 하고 준욱들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나였는데, 언젠가 부터는 너무 열심히 하는 게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하기가 싫어졌다.

지나친 배려가 오히려 다른 사람과 나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다음 부터는 아예 신경을 안 쓰려는 경향이 생겼다.

어째...중간이 없냐;;


잘 하고 싶은 걸 좋아할 필요는 있지만, 그걸 제일 좋아할 필요는 없다.

나는 가끔 더 좋아하는 것에 마음을 뺏겨도 괜찮다.

그게 지금은 멍 때리는 거다, 배우 김수현 생각하면서.


뭐든 제때 해야 하는건가.

연예인 좋아한 적은 많아도 기사 찾아보고 그런 적은 별로 없었는데 이 나이에 김수현군 기사를 다 찾아 읽고 앉아 있다.

그런데 그게 핵심이 아니라 내가 김수현 연기를 보면서 느낀 건 김수현은 어떤 역할을 해도 참 남자답다고 느껴진다는 거다.

인터뷰 같은 걸 보면 약간 똘끼도 있는 것 같고 독특한 면이 있다.

어린 나이에 그런 커다란 성취를 했다는 것에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

나는 인간적으로 멋지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보면 축하하는 척하면서 질투를 한다.

지금 그게 누구였는지 다 생각은 안 나지만, 항상 그랬던 것 같다.

나와 비교를 하면서.


아직, 정말 어른이 되려면 너무나 멀었나보다. 

어쩌면, 내 정신 상태는 한치도 자라지 않아서, 다른 사람을 품을 줄 몰라서, 연애도 안 됐나?


하여간, 걸으면서 요 며칠 김수현군 영상들을 보며 느낀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는 자신이 남자라는 것에 자부심을 크게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배우 김수현, 인간 (내가 그 사람을 아는 건 아니지만) 김수현이 빛나 보이게 하는건가?


내가 나를 여자로서 성장 시켜야 하지 않을까?

다른 말로 하면 여자로서의 자긍심이다.

나는 항상 여자 남자를 떠나서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가만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게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난 해에 랜드마크 관계 세미나를 끝낼 무렵, 처음으로 여자인 내가 좋을 수도 있겠다고 느낀 뒤에 끊임없는 의문은 어떤 여자가 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거다.

기본적으로 내 몸은 여자이지만, 내 뼛속까지 스민 외모지상주의적 시선으로부터 나는 여자가 될 수 없는 거였다.

난 안 예쁘니까.

경험적으로 배운 여자는 예뻐야 대우받고 예뻐야 사랑 받는 거였다.

꾸미려고 노력하면 내눈에 안 예쁘고 내 성에 안 차는 내가 더 처량해 보여서 신경을 안 쓰고 다녔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여자가 된다는 건, 경험적으로 학습적으로 형성된 이미지만 떠오른다.

피부가 좋아야 하고, 몸매가 좋아야하고, 교태도 있어야 하고, 엄마가 되면 애도 잘 봐야 하고, 살림을 잘 해야 하고.

뭐 이런 것들만 생각이 든다.

와.... ㄴ ㅏ... 진짜... 이러고 있었구나.


여자로서 성장한다는 건 어떤 걸까?

사피엔스에서 본 것 처럼, 나 어떤 여자가 되고 싶은가?

어쩌면 내가 가진 성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는 것이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중요한 시발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겠다.

다른 사람이 이러쿵 저러쿵 내 몸에 대해서 말하는 것으로부터 먼저 자유로워지면 그게 가능해질까?

여자로 성장하기에 대해서 꾸준히 고민하고 뭔가 해봐야겠다.


걷고 걷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도 가려서 해야하는 데 하면서 나를 통제하려고 드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게 통제하려고 들 때,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생각들인데 말이다.


솔직하게

공부해야 하는데 하기 싫다.

인터뷰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준비 하기 싫다.

영어 공부해야 하는데 한국 노래 듣고 싶다.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은 거 안 하고, 

그동안에 참고 참으면서 해야 할 것 같은 거 했던 행동방식 말고 이번엔 내키는대로 해보고자 한다.

Inverness행 기차표를 예매했다.

성공하면 Isle of Skye까지 연결해서 들어갔다 오자.


감사하다. 

이런 모든 감정들, 생각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나를 다그치지 않을 수 있는 한달이 있어서.

옆에서 내가 흔들릴 수 있는 걱정스러운 말들 던지는 사람들 없어서.

혹시나 나주에 후회할 지도 모르겠다.

내가 왜 그 때 그렇게 미친듯이 게을렀나 하면서.

지금 코딩 면접이 하나 진행 중에 있는데 뭔가 더 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상황이니까.


그런데, 그래 보련다.

무슨 일이 생기나.


종일 그랬는데도 진정이 안 되고 왜이리 뭔가 붕 뜬 기분이 들지?

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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