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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위에 점하나

노예의 성, 엘미나 "Elmina castle in G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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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가나 전자 정부 구축 프로젝트" 때문에 운이 좋게도 3주간 아프리카 땅을 밟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나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지다니...싶다. 아크라(가나의 수도) 공항에 내려서 온 몸으로 가나의 공기를 맞았던 순간이 떠오른다. 
'ㅇ ㅏ;; 덥구나!'
2008년에도 프로젝트 마무리를 위한 5주간 출장이 있었다. 종종 그 때 있었던 일들을 떠 올려본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설픈 일처리가 아쉽긴 하지만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여러가지를 경험했지만, 그 중에서도 깊은 인상을 주었던 곳이 있어서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 보고자 한다. 먼저, 검색을 좀 해 보니, 내 영어가 짧아 가이드가 하는 설명을 다 알아듣지 못 해 미처 몰랐던 것까지  세세하게 기록해둔 블로그도 발견했는데, 그것을 통해서도 내가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좀 더 충실하게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

그 곳은 노예의 성이라 불리는 "Elmina castle". 사실, 그 곳에 갈 때까지, 아니 방문하고 그곳을 떠나면서도 그곳이 나에게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거라는 것을 몰랐다. 그냥 아프리카니까 그런 게 있나보다 했고, 그 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함께 갔던 코디테이터분이 간간히 통역해 주는 내용을 듣고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그때는 한국에서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출장을 가게 된 것에서 온 업무적 부담감이 너무나 컸다.

Elmina... 가기 전에 알고 갔더라면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어떤 곳인지 알고 싶었다. 
이 성은 처음에 1482년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지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노예매매를 위해 지어진 것은 아니고 금채굴을 위한 성이었는데, 사하라 사막 아래쪽에 지어진 유럽 건물 중에 가장 오래 된 건물이라고 하니, 그 에 깃든 사연도 정말 많을 것 같은 느낌이다. 처음 건립 의도와 달리 금채굴의 생산성이 떨어지면서, 대서양 노예 무역에 가장 중요한 거점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1637 ~ 1814 동안에는 네덜란드 령, 이후 1871 ~ 1957 동안에는 영국령 그리고 현재는 가나에 소속되어 있다. 유네스코에 세계 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유명하고 역사적인 장소이다.

이런 곳을 다녀 오고도 그 때는 그것을 몰랐다니, 부끄럽고 아쉬운 마음이다.



내가 가진 사진은 성안에 있던 나와 일행들, 즉 인물 위주의 사진과 주변 전경 뿐이어서 건물 전체 사진은 위와 같이 다른 분들 사진으로 대신한다.

여기에서 부터는 나와 내 일행이 찍은 사진. 볼만한 게 별로 없지만 그곳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고자 올린다.

[사진둘] 2층에서 바라본 성의 왼편


[사진셋] 2층에서 바라본 성의입구


[사진넷] 2층에서 바라본 성의 오른편


[사진다섯] 뺏길 게 그렇게 많았나.


[사진여섯] 아기자기한 건물


[사진일곱] 같은 가이드와 다닌 여행객들


[사진여덟] 여성들이 갖혀있던 곳 표식.


[사진아홉] 노예들이 팔려나가는 통로


이곳에 오면, 노예들은 저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배에 태워져, 나고 자란 이곳을 떠나 멀고 먼 곳으로 올아오지 못 할 여정에 보내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고단한 삶 마저도 살아남지 못 하고, 갖혀있는 내내 약해진 몸 때문에 죽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그 때는, 가이드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너무 숙연한 마음이 들어 그 방 내부를 사진으로 남기지 못 했지만, 이 통로는 이어진 커다란 방이 있었다. 사실 아무것도 없으니까 커다랗다고 말 할 수 있지, 내 짐작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30~40평도 될까 말까한 하나의 방에 커다란 쇠구슬 족쇄를 채운 사람들을 몇백명씩 한꺼번에 가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방의 높은 천정에는 2층에서 열어볼 수 있는 굴뚝같이 생긴 구멍이 있었는데 그 곳으로 먹을 것을 던져 주었다나... 

상상해 보았다. 내가 발에 무거운 쇠구슬을 차고, 몇 백명과 함께 서로 살을 부대끼며 갖혀 있는 모습을. 몸을 뉠수도 없고, 그러다 죽은 사람이 있기라도 하면, 그저 발맡에 밟아가며, 미칠 듯한 허기를 채울 수도 없게 간간히 대충 떨어지는 먹을 거리. 상상만으로 그들의 고통을 어떻게 내가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사진열] 편히 쉬세요.


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후손들 혹은 관광객들이 이렇게 장식을 두고 가기도 한다고 한다.

[사진열하나] 슬픈이야기 후, 흐린날씨의 슬픈 바다


내가 갔던 때에 비가 내렸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보니 비가 내려서 그랬는지 몰라도 곳곳이 모두 슬프게 느껴졌다.

[사진열둘] 엘미나 성 뒤편


성 뒤편으로 저렇게 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저 다리 건너 맞은 편에서는 사람들이 무척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진열둘] 성 뒤편 삶의 현장


죽음 가득했던 그 성안에서 열심히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기분이 굉장히 묘했던 것 같다.

[사진열셋] 성 앞 바다


[사진열넷] 흐린 날에도 조업


[사진열다섯] 힘겨운 삶,Gold coast


가끔 이곳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마음 속 틈을 비집고 들어올 때가 있다. 처음에는 아프리카의 각 부족장들이 백인에게 부족을 노예로 팔았다고 했다. 문명과 접하면서 재물에 대한 욕심이 생겨서 그런게 아닐까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백인만의 잘 못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도대체 사람은 어디까지 잔인해 질 수 있는걸까? 사람의 인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노예를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런 만행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보지 않았다면 적어도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로 봤어야 맞았을 텐데.

그 시대에는 생명체만으로 의미를 갖지 못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힘이 우선이고, 내가 우선이고. 지금까지도 우리가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 " 나와와 다름을 받아들이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그때는 좀 더 솔직하게 드러났던 건 아닐까?
왜 사람은 처음부터 그런 맞땅함을 알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 수많은 희생을 겪어야만 그렇게 중요한 사실을 희미하게 깨닫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숨어있을 그 잔인성을 휘두르며 살았을지 모르는 일이다.

누구의 탓이라고 할 수 없는 일들.
그냥 의문스럽다.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날까?
그리고 미래의 후손들이 경악할지도 모르는, 현시대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지금의 만행들은 무엇일까?

결론 내릴 수 없는, 어디서 왔는지 나 자신도 모를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런 고민이라도 할 수 있게된 계기를 가졌다는 것이 참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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